햇살

제가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리라면 그때입니다. / 당신과 함께 김을 매고 논둑에 앉아 소박한 참을 먹던 그때 말입니다. / 재촉하거나 재촉받는 일 없는 삶. / 기껏해야 먼 발치 아랫목을 들추고 나온, 재 너머 김 씨네 시기심 정도가 전부입니다. / 논둑에서의 참 소쿠리는 푸른 하늘에 어울리는 정말 따스한 느낌의 햇살을 동반합니다. / 지금은 그 ‘따스한 햇살’이라는 단어의 진짜배기를 돌려받기가 쉽지 않습니다. /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 없으니까요. / 93년의 다르질링 차밭은 이제 다시 만날 수 없습니다. / 10여년의 짧은 시간 경북 봉화에서의 농부 생활은 그때를 되살리게 충분했습니다. / 그렇게 오랜만에 만난 ‘햇살’이 내 살을 파고들었습니다. / 도시에 살면서 혹은 도시적인 삶을 갈망하면서는 도무지 깨달을 수 없는 햇살. / 그저 자연을 배회한다고 그 햇살이 찾아들지도 없습니다. / 그건 햇볕일 뿐입니다. / 햇살은 혼자일 때 찾아오지 않습니다. / 항상 당신이라는 존재가 함께할 때만 찾아옵니다. / 또한 당신의 존재는 일의 기쁨이 행복이라는 말로 대체되는 묘약입니다. / 회사를 위해 일하는 행복에서는, 돈이 주는 풍요는 만질 수 있어도 햇살은 만질 수 없었습니다. / 햇살은 작은 욕심일 때만 만날 수 있으니까요.

[이준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