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파키스탄 충돌과 전쟁 억제력의 재해석

  • 수탉
  • 05-11
  • 7
  • 0

  이달 초 인도령 카슈미르 지역 파할감에서 발생한 관광객 처형 사건은 또다시 인도-파키스탄 간 무력 충돌의 도화선이 되었다. 카슈미르는 두 국가 간 수십 년째 분쟁이 계속되는 곳으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분쟁지 중 하나다. 과거 유사한 사건들은 장기적이고 치명적인 국지전으로 이어졌고, 양측의 보복 공습과 국경 전투로 수백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곤 했다. 대표적인 사례는 1999년 '카길 전쟁'이다. 당시 파키스탄의 침투에 대응한 인도의 대규모 군사 작전은 두 달 이상 지속되었고, 공군과 육군이 모두 동원된 실질적 전쟁이었다. 그 외에도 2001년 인도 국회의사당 테러 이후 벌어진 10개월 간의 군사 대치, 2019년의 풀와마 폭탄 테러 이후 벌어진 공습과 공중전 역시 수일에서 수개월에 이르는 긴장 국면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번 충돌은 의외로 단기간에 종결되었다. 그 배경에는, 알려진 것처럼 미국의 중재가 아닌, 무기 체계의 역학이 놓여 있었다. 핵심은 중국산 전투기가 인도의 최신 프랑스제 전투기 라팔을 격추시켰다는 보도였다. 이 사건은 전장을 넘어 심리전 차원에서 종전의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인도 공군의 자존심이라 할 수 있는 라팔이 격추당한 것이 인도 지도부는 물론 여론에서도 전쟁 지속에 제동을 거는 신호가 됐기 때문이다. 미국 역시 전쟁이 더 지속되어 중국산 전투기나 기타 다른 무기들의 성능이 더욱 입증되면, 국제적 힘의 역학에서 미국의 위치가 위협받을 수 있게 된다는 판단이 섰던 것으로 전언된다.  

  이러한 양상은 과거와 비교해 확연히 다른 국면을 보여준다. 과거에는 ‘적에 대한 압도적 군사력 확보’가 전쟁을 끝내는 유일한 방안으로 인식되었지만, 이번 인도-파키스탄 분쟁은 '상대방의 군사기술이 결코 얕잡아볼 수준이 아님'이 명확히 드러날 경우, 오히려 전쟁이 억제됨을 보여줬다. 이 점은 미국의 베트남전, 아프가니스탄 전쟁과도 연결된다. 미국은 전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가지고도 전쟁의 끝을 명확히 맺지 못했다. 이스라엘이 하마스를 군사적으로 압도하면서도 전쟁의 '종식'이 아닌 '순환'만을 반복하는 현실도 같은 맥락이다.

  이번 사례는 군사 기술의 일방적 우위가 아니라, ‘균형된 위협’이 전쟁을 억제할 수 있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공포의 균형'이라는 개념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양측이 서로를 실질적인 위협으로 인식하고 있을 때, 전쟁은 오히려 발생하기 어려워진다. 더 나아가, 기술적 역량이 일정 수준 이상일 때 그것은 단지 전쟁 수행의 도구가 아니라, 전쟁 억제의 조건이 되는 것을 확인시켜 줬다. 즉, 첨단 군사력은 그 자체로 외교적 데탕트가 된다.

  이러한 분석은 한국에도 직접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 북한의 무장 능력 고도화가 단지 위협이 아닌, 전쟁 억제의 역설적 수단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기존의 관점은 북한의 군사력 강화가 한반도 불안을 심화시킨다고 보았지만, 지금의 인도-파키스탄 사례처럼 군사적 균형이 현실화되면, 불안정하지만 파국적 충돌을 피할 수 있는 새로운 전략 환경이 형성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시각은 국내외 언론에서 적극적으로 다뤄지지 않는다. 중국, 북한, 러시아 등 서방이 규정한 '위협 국가'들의 기술적 성장이 오히려 국제 질서 안정에 기여하고 있다는 주장은 이분법적 세계관과 맞지 않기 때문이다. 서방 정치 권력과 그에 편승한 언론은 여전히 ‘도덕적 우위’와 ‘민주주의 대 전체주의’라는 내러티브를 유지하며 정보를 구조화한다. 이러한 편향은 국민들의 사고 구조를 경직시키고, 실질적 안보 전략 논의마저 이념에 종속되게 만든다.

  결국 우리는 기술 진보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다시 맞닥뜨린다. 그것을 전쟁을 위한 수단으로만 볼 것인가, 아니면 전쟁을 예방하는 전략적 자산으로 볼 것인가. 이번 인도-파키스탄 사례는 단지 지역 분쟁의 종료가 아니라, 군사력과 외교, 그리고 기술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시작을 암시하고 있다. 이처럼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파괴적인 기술이 때로는 가장 평화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전쟁을 막는 기술'에 대해 다시금 성찰할 필요가 있다.

북두문학/이준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