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기회와 자원의 불평등이 심화되고, 격차와 양극화가 성장을 가로막는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저성장과 경쟁 탈락이 곧 죽음으로 연결되는 불평등 사회의 현실, 그리고 그 안에서 분열과 갈등으로 치닫는 공동체의 위기를 정확히 짚어냈다. 그의 취임사를 통해 현 시대의 가장 적합한 대통령이 선출됐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 해법에 있다. 대통령은 AI, 반도체 등 첨단기술 산업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와 지원'을 통해 미래를 주도하는 산업 강국으로 도약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는 산업 고도화의 일반론적 접근일 수 있으나, 지금 한국 사회가 직면한 현실에 대한 실질적 대응이 될 수 있는가는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그런 주장은 필자가 1970년대 1980년대 내내 학교에서 반복적으로 받은 교육의 일부이기도 하다.
AI와 반도체 등의 첨단산업은 중요한 국가 전략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 분야는 이미 경험했던 것처럼 자본, 교육, 지리, 네트워크 접근 등에서 고급 자원이 필요한 산업이다. 이들 분야에의 집중 투자는 필연적으로 특정 지역과 계층에 기회와 자원을 집중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이는 “기회 불평등의 해소”를 외치면서, 다시 “기회의 집중”을 설계하는 셈이다.
첨단산업은 결코 노동집약적이지 않다. 소수의 고숙련 인력을 제외하면 대다수는 주변부로 밀려난다. 이미 결과가 그걸 증명한다. 그런데 또 여기에 집중 투자를 한다면, 다수 국민의 실질적인 기회는 그만큼 차단되고 공동체 위기는 더욱 심화됨을 예측할 수 있다.
이번 21대 대통령 선거 결과는 정치적 갈등이 이미 지리적으로 고착화된 양상을 보여준다. 수도권과 서부 지역은 더불어민주당, 동남부와 강원·경북권은 국민의힘 지지로 극명하게 갈라졌다.
이러한 분열은 단순한 정치적 성향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감정적 대립을 조성한 정치 세력이 의도한 바다.
아쉽게도 국회의원 수십 명과 일부 행정부 관료들은 이런 갈등 구조가 유지돼야 개인적 이익이 발생하는 구조적 사회가 된 탓이다. 이는 간단한 병폐가 아니다. 선거로 표출된 이 분열 양상이 더욱 구조화되는 것을 막으려면, 이제 첨단 과학 강국과 같은 구호는 잠시 미뤄둬야 한다.
지금 한국에 진짜 필요한 산업 전략은 ‘다수가 접근 가능한 생산 기반의 재건’이다. 대규모 자본이 아닌 중소자본과 대중 참여가 가능한, 노동 친화적 산업의 확대가 그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일반 제조업, 생활용품 산업, 경공업 공장, 농공단지 재활성화 등 보편적인 산업 접근로를 마련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들은 고용 효과도 높고, 특정 기술 자격이 없이도 진입할 수 있어 청년·중장년·여성 모두에게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다수의 국민이 원하는 복지는 이런 것이 아닐까요?
또한, 지역 기반의 소규모 산업 클러스터는 수도권 집중을 완화시키고, 지역 경제를 자생적으로 회복시킬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다. 이는 단순한 복고가 아니다. 한국의 산업 생태계를 다층화하고, 사회적 안정성을 확보하는 새로운 산업 전략이다.
우리에게는 한국산 제품을 선호하는 미국과 중국, 러시아,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 남미, 아프리카의 시장이 있다. 단지 팔 물건이 핸드폰과 자동차, 중화학뿐이라는 구조적 모순을 전환하면, 새로운 시장이 무궁무진 열려 있는 셈이다.
공정 성장은 대통령의 구호처럼 ‘결과의 분배’만으로는 이룰 수 없다. 기회의 분배, 접근의 보편성이 함께 해야 한다. 그것은 곧 산업 기반의 분산과 평등한 접근이라는 물리적 구조의 재설계로 이어져야 한다.
지금의 한국은 고도 기술 몇 개를 수출하는 ‘기술 중심 국가’를 목표로 해서는 곤란하다. 다수 국민이 생계를 꾸리고 참여할 수 있는 ‘보편적 생산 국가’로 방향을 전환해야 할 시점이다.
분열된 국토 위에 하이테크의 성만 쌓지 않고, 다수가 유기적 관계를 맺는 변화를 시도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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