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 기술 공약이 가려버린 민생

작성: 이준엽 | 게시: 2025년 5월 11일

과학기술 R&D 중심 정책, 이대로 괜찮은가

대선이 다가오면 후보들이 빠지지 않고 제시하는 공약 중 하나가 과학기술 연구개발(R&D) 예산의 대폭 확대다. 첨단기술 강국, 미래산업 육성, 4차 산업혁명 대응 등 그럴듯한 명분이 뒤따른다. 최근 이재명 후보는 인공지능(AI), 반도체, 이차전지, 바이오·백신, 수소, 미래차 등 미래 산업을 키우겠다고 구체적인 분야를 제시했다. 다른 후보들도 유사한 노선을 걷고 있다.

겉으로 보면 바람직한 방향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질문을 던져야 한다. 지금 한국 사회가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가 과연 ‘AI 경쟁력’인가, 아니면 ‘일자리’인가?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현재 대한민국은 청년은 물론 중장년과 노년층까지 실업과 고용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이들이 과연 고도의 전문성을 요구하는 첨단 기술 산업에 흡수될 수 있을까? 아니, 그 전에 이 산업들이 창출하는 일자리는 과연 보통 사람들을 위한 것인가?라는 의문이다.

대부분의 과학기술 중심 산업은 고소득, 고학력 전문 인력 중심의 구조다. 그 결과, R&D 투자의 과실은 정부 공무원, 공공기관, 삼성전자 같은 대기업, 혹은 이미 부유한 계층에게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극단을 내세워야 인기를 끄는 정치 구조는 ‘투자’라는 경제 원리를 왜곡하고 있다.

정치적으로 인기 있는 투자는 고용 불안이나 경제 불균형을 심화시키는 악순환을 낳는다. 이는 기업과 부유층의 소득이 국내 투자나 소비 대신 해외 투자, 해외 여행, 고가 수입품 구입에 쓰이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오랜 기간 반복된 사례처럼, 정치적 투자와 내수 연결성은 미미하다. 기술 발전이라는 이름표 아래, 국민 삶의 질은 개선되지 않는 불균형한 성장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때로 정치적 투자는 교활하기까지 하다. 세계 최고 수준이라 자부하는 기업들이 정부 지원 없이는 어려움을 겪는다는 황당한 보도가 나온다. 정말 그렇다면 그 기업의 경쟁력 자체를 되짚어봐야 하지 않을까?

현재 한국 대기업은 국내 고용 창출보다 글로벌 시장, 특히 부유한 미국을 위한 생산 기지 역할에 집중하거나, 미국에 공장을 세워 현지 인력을 보살피는 데 더 힘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는 걸까?

과학기술 투자 중심 전략을 고수하는 것은 낙수효과 없는 성장을 더욱 고착화시킨다. 고임금 기술직만 성장하는 구조는 서민, 중소기업, 자영업자를 소외시키며 한국 사회의 균형을 무너뜨린다.

이제 방향을 바꿔야 한다. 국민 다수가 체감할 수 있는 민생 중심 경제 전략이 필요하다. 기술을 부정하자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 소비와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는 ‘생활 밀착형 산업’에 더 주목해야 한다. 국민 대다수는 최고급 기술을 원치 않는다. 적당한 품질, 합리적인 가격, 안정된 서비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할 지속 가능한 일자리를 원한다. 과학기술 투자도 중요하지만, 일반 소비재 시장 활성화, 중소기업과 자영업 기반의 내수 확대, 서민이 체감할 경제 구조 전환이 더 시급하다.

다가오는 대선에서 유권자는 화려한 선거 기술 용어 이면의 질문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 공약이 내 휴대폰을 바꾸는 것인지, 내 삶을 바꾸는 것인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