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멘 문제를 논할 때 국제 사회는 늘 “하나의 통일된 국가”라는 전제를 깔고 접근해 왔다. 그러나 이는 실제 예멘 사회의 뿌리 깊은 현실과 충돌하는 잘못된 출발점이다. 애초에 예멘이라는 국가는 현대적 의미의 ‘국민국가’로서 기능한 적이 거의 없으며, 그 내부에는 서로 다른 역사, 종교, 부족 연합, 정치 문화가 혼재돼 있었다. 현재의 위기를 풀기 위해서는 그 구조적 전제를 바꿔야 한다. 지금 예멘은 "셋으로 갈라진 것이 아니라, 애초에 셋이었다"는 점에서 시작해야 한다.
1990년 북예멘과 남예멘이 통합되기 이전, 이들은 서로 다른 식민지 역사와 이념 체계를 가졌다. 북예멘은 오스만 제국의 영향 아래 종교적 왕정과 부족 전통이 강했고, 남예멘은 영국령을 거쳐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발전했다. 이 둘은 같은 아랍어지만 한국의 전라도 경상도만큼 다른 방언을 사용했으며, 교육, 여성의 지위, 정치 체제, 심지어 행정 관행조차 달랐다. 통합은 외부 국가들의 정치적 희망에 의한 것이었지, 그들 내부의 부족 간 합의나 내재적 통일성에 기반한 것이 아니었다.
통합 이후에도 중앙 정부는 언제나 부족과 종교 공동체에 의해 도전받았고, 후티 반군의 부상이나 알카에다의 확장은 정부가 구심점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국민 개개인이 중앙 정부보다 자신의 부족장, 종파 지도자, 또는 외부 무장 세력을 더 신뢰하는 사회에서 "단일 국가"라는 개념은 사실상 작동하지 않았다. 단지 외부의 시선에서 그어진 선을 놓고 여기는 뭐다라는 식의 단정적 기술이 통설로 마무리된 오류가 지금의 분란을 키웠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현실을 무시한 채 "통합 예멘"을 이상으로 삼는 것은 더 이상 건설적이지 않다. 국제 원조는 '중앙 정부'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단체에 흘러들어가 암시장으로 빠지고, 사회의 구조적 분열은 심화된다. 후티 반군의 영향력이 이렇게까지 커진 것이, 유관국들 모두가 짐작도 하지 못했던 부분인 것은, 서방이 그들을 몰랐다는 중요한 방증 사례로 충분하다.
이제 예멘의 미래를 논할 때, 현실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해법은 ‘하나의 예멘’을 상정한 통합 개념을 버리고, 현재의 실질적 분할 구도를 인정하고 세 개의 예멘을 인정하고 상호 협력 가능한 체제를 만드는 방향성으로 의견을 조율해야 한다.
예멘을 하나로 묶으려는 시도는 순진한 이상주의이며, 실제 예멘 사회의 내부 논리를 무시한 폭력적 논의다. 지금 해당 지역의 혼란을 해결하는 것은 그들의 이질성을 인정하고, 상호 존중 가능한 구도를 설계하는 일이다. 그것은 현대 사회 민주주의 국가들의 지향점과도 다르지 않다.
예멘 사회가 다양한 이념적 종교적 구성체임을 알고 있음에도, 외부 기준에 따라 억지로 하나의 국가를 만들려는 시도야말로 어리석은 짓이다. 오히려 예멘은 ‘원래대로’ 돌아가야 한다. 그때에 비로소 진정한 평화와 협력이 시작될 수 있다.
과거의 실수는 지금 후티반군의 탄생으로 증명된 내용이다. 이제는 그들의 명칭에서 반군이란 말을 삭제하고 접근해야 한다. 오히려 외부 세계의 반향적인 접근이 그들을 하나로 뭉치게 하고 평화를 가져올 가능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