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멘의 숨겨진 아름다움
예멘은 흔히 뉴스에서 접하는 갈등의 이미지 너머, 아라비아 반도에서 가장 독특하고 풍요로운 아름다움을 간직한 땅이다. 고대 문명의 숨결이 깃든 풍경, 자연이 선사한 귀한 선물들, 그리고 오랜 역사를 통해 다져진 문화가 어우러져 방문객의 감탄을 자아낸다.
예멘의 건축 유산: 하늘을 찌르는 어도비 하우스
예멘의 문화적 아름다움은 그 독특한 건축물에서도 빛을 발한다. 특히 '어도비 하우스(Adobe House)'로 대표되는 예멘의 전통 건축은 세계 건축사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독창성을 자랑한다. 흙벽돌(어도비)과 돌, 나무를 주재료로 하여 지어진 이 건물들은 마치 초고층 빌딩처럼 하늘을 향해 솟아 있다. 특히 사나(Sana'a) 구시가지와 시밤(Shibam) 같은 도시는 수세기 전에 지어진 고층 건물로 최고 11층의 어도비 건물들이 밀집해 있어 '사막의 맨해튼' 또는 '진흙 빌딩의 도시'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실제로 진흙 도시의 모습을 마주한 방문자들의 입에서는 탄성이 끊이지 않는다.
이러한 어도비 하우스는 단순한 주거 공간을 넘어, 예멘인들의 지혜와 삶의 방식을 담고 있다. 두꺼운 흙벽은 낮에는 뜨거운 햇살을 막고 밤에는 내부의 온기를 유지하여 혹독한 사막 기후에 적응하는 데 탁월하다. 층을 높게 지은 것은 제한된 공간에서 더 많은 사람이 거주하고, 방어적 기능을 강화하기 위함이었다. 각 건물은 섬세한 기하학적 문양과 흰색의 석고 장식으로 꾸며져 있는데, 이는 단순한 흙집이 아닌 아름다운 예술 작품으로 승화됐다.
전설적인 '모카 커피'의 본향
예멘의 아름다움은 향기로운 커피 한 잔에서 시작된다. 바로 전 세계 커피 애호가들의 찬사를 받는 모카 커피(Mocha coffee)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예멘 서부의 고원 지대에서 자라나는 아라비카 원두는 그 자체로 초콜릿, 코코아, 과일, 때로는 미묘한 스파이시함까지 품은 독특한 향미를 자랑한다. 이는 인위적인 가향이 아닌, 예멘의 특별한 기후와 토양이 빚어낸 자연의 선물인 동시에 조물주가 인류에게 내린 최고의 선물 중 하나다.

그 이름은 17세기부터 19세기 초까지 전 세계 커피 무역의 중심지였던 예멘의 항구 도시 알-모카(Al-Mocha)에서 유래했다. 이곳을 통해 예멘의 귀한 커피가 세계 각지로 퍼져나가며 '아라비아 펠릭스(Arabia Felix)', 즉 '행복의 아라비아'라는 예멘의 명성을 드높였다. 1555년 오스만제국의 콘스탄티노플에 만들어졌던 세계 최초의 커피하우스로 불리는 '키바 한(Kiva Han, 또는 Kanes)'는 모카항을 통해 커피를 수입하던 시리아의 상인 하캄과 샴스가 설립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이탈리아로 건너간 커피하우스가 오늘날 카페의 원조가 된 일화는 유명하다. 그 시작이 바로 예멘의 모카커피였다.
오늘날 우리가 카페에서 마시는 달콤한 '카페 모카'는 예멘 모카 커피가 가진 천연의 초콜릿 향미에서 영감을 얻은 변형된 음료일 뿐, 진정한 모카 커피의 매력은 예멘 땅에서 난 원두 본연의 깊고 복합적인 맛에 있다.
고대 향료의 황금빛 흔적: 유향과 몰약
커피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예멘은 고대 세계의 중요한 무역로를 지배했다. 바로 유향(Frankincense)과 몰약(Myrrh)이라는 신비로운 향료 덕분이다. 예멘 남부의 도파르(Dhofar) 인근 지역은 유향 나무가 자라기에 최적의 환경을 제공했으며, 이곳에서 채취된 유향은 '향료의 길(Incense Route)'을 따라 고대 이집트, 로마, 메소포타미아 등지로 퍼져나갔다. 황금만큼이나 귀하게 여겨졌던 이 향료들은 종교 의식, 의약품, 향수 등으로 사용되며 예멘에 막대한 부와 번영을 가져다주었다. 이는 시바 여왕의 전설과 같은 강력한 왕국이 예멘 땅에서 탄생할 수 있었던 배경이기도 하다.
자연이 선사한 또 다른 선물: 천연 꿀
예멘의 자연은 꿀벌들에게도 풍요로운 터전을 제공한다. 특히 시드르 꿀(Sidr honey)은 예멘을 대표하는 또 다른 특산품이다. 시드르 나무(대추야자의 일종) 꽃에서 채집되는 이 꿀은 뛰어난 품질과 독특하고 깊은 풍미를 자랑하며, 약용으로도 사용될 만큼 귀하게 여겨진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꿀 중 하나로 꼽히는 시드르 꿀은 예멘의 청정한 자연과 오랜 양봉 전통이 빚어낸 귀한 선물이다.
숨겨진 땅의 보물: 석유와 가스
커피, 향료, 꿀과 더불어 20세기 후반에는 현대 사회의 중요한 자원인 석유와 천연가스가 예멘의 땅속 깊이 잠들어 있음이 밝혀졌다. 비록 걸프 지역의 거대 산유국들만큼은 아니지만, 예멘은 상당한 양의 탄화수소 자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는 국가 경제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소코트라 섬: 경이로운 식물자원이 선사하는 관광의 매력
예멘 본토에서 약 380km 떨어진 아라비아해에 외로이 떠 있는 소코트라 섬(Socotra Island)은 마치 다른 행성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독특한 자연 경관을 자랑한다. 이 섬은 특히 경이로운 식물자원으로 인해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이는 소코트라를 특별한 생태 관광지로 만드는 핵심 요소다.

가장 대표적이고 상징적인 식물은 바로 용혈수(Dragon's Blood Tree, Dracaena cinnabari)다. 거꾸로 선 우산처럼 생긴 독특한 외형을 가진 이 나무는 줄기에서 붉은색 수액(용혈)이 나와 붙여진 이름이다. 이 수액은 고대부터 약재, 염료, 니스 등으로 사용되었으며, 용혈수의 기이한 모습은 소코트라의 초현실적인 풍경을 완성한다.
이 외에도 뚱뚱한 줄기에 분홍색 꽃을 피우는 사막 장미(Desert Rose, Adenium obesum Socotranum), 오이처럼 생긴 열매가 달리는 오이 나무(Cucumber Tree, Dendrosicyos socotrana) 등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소코트라에서만 볼 수 있는 기이하고 아름다운 식물들이 섬 곳곳에 펼쳐져 있다.
아름다움 너머의 이야기
예멘의 인구는 사우디아라비아와 필적하는 수준으로 약 4,000만 명 정도로 추산되며, 인구의 대부분은 서부 산악지대에 몰려 있다. 예멘의 땅 전체 크기는 한반도의 2배가 넘는 약 555,000 km²다.
고풍스러운 어도비하우스와 모카 커피의 고혹적인 맛, 유향의 신비로움, 시드르 꿀의 달콤함, 약 1,906km에 달하는 해안선에서 누리는 풍부한 수산물, 그리고 땅속 깊이 숨겨진 자원까지. 예멘은 아라비아 반도에서 찾아보기 힘든 다채로운 아름다움과 풍요로움을 간직한 땅이다. 뉴스 속 혼란스러운 이미지를 넘어, 이 축복받은 땅이 품고 있는 자연과 역사의 경이로움을 기억한다면, 예멘을 이해하는 새로운 시각을 얻을 수 있다.